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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작으로 처음 선교 나갈때 이야기...

샬롬!

현재 몽골에서 사역하는 엄명훈 선교사입니다.

열방 선교를 위해 선교사를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작으나마 첫번째 사역 나가게 된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저는 필리핀 APNTS 를 졸업후 한국에 와서 대광교회(윤문기 목사님), 주원교회(이용주 목사님), 남서울교회 (박준기 목사님) 이 세 교회에서 부교역자 생활을 하다가 남서울 교회 파송으로 2008년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첫 사역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나사렛 교단은 선교지를 나갈때 아시아 태평양 지구에 지원서를 쓰고 허락을 받고 나가는 시스템입니다.

제가 2008년 카자흐스탄에 선교사로 나갈때 그곳에는 박유석 선교사님이 사역을 활발히 하시고 계셨고 한국에서도 현재 선교가 잘 된다며 소문난 지역이었습니다. 남서울 교회에서 원래 저를 몽골로 파송할 계획이었으니 박유석 선교사님의 부탁으로 막판에 선교지를 카자흐스탄으로 바꾸어 파송받고 나갔습니다. 


카자흐스탄에 첫발을 딛고 가니 모든것이 낯설고 저 멀리 설산이 보이는 아, 내가 선교지에 왔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첫 선교지 나갈때 답사를 한다고 하지만 저는 그런것 없이 생초보로 첫 선교지에 가니 공항에서 박유석 선교사님, 김응범 집사님(현 김응범 선교사님), 그리고 현지인 알마스 전도사가 맞이하여 정말 감사하게 첫 인사를 잘 나누었습니다. 제가 지내야 할 러시아식의 약간 구형의 아파트를 안내 받고 어쨌든 기도했던 대로 아파트여서 감사했습니다. 아스타나에 사시는 박유석 선교사님은 곧 가셔야 하고 이후 정말 초기 정착의 많은 부분을 김응범 집사님께서 도와주셨습니다. 정말 이분이 아니었다면 너무 고생했을텐데... 정말 저에게는 너무 감사한 주님께서 보내주신 조력자였습니다. 김집사님 부부는 같은 대학 러시아과 학생으로 교환학생으로 러시아 모스크바에 갔을때 박유석 목사님 교회에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고 하시더군요. 이후 결혼후 카자흐스탄에서 재회하여 알마티 나사렛교회로 나오시며 저도 만나고 주님의 계획 가운데 지금까지 알게 된 것입니다.


거기서 왜 제가 알마티로 와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알마티는 카자흐스탄의 경제 수도고, 행정 수도는 아스타나 라는 곳입니다. 박유석 목사님께서는 아스타나 라는 곳에 사셔서 자주 만날수가 없었는데 저 때문에 알마티까지 오셔서 마중하여 주셔 너무 감사했지요. 알마티와 아스타나는 1,200km 떨어진 아주 먼 거리로 침대기차 나 비행기로 왔다갔다 한다고 했습니다. 현지인 알마스 전도사가 담임으로 맡고 있는 알마티 나사렛교회가 잘 부흥이 안되고 인원이 너무 적어 저에게 알마티 전도사를 도와 교회를 부흥하는데 옆에서 도와 주라고 하셨습니다. 아스타나 사역은 잘 되는데 알마티 사역이 너무 약해서 저를 부르셨던 것이었습니다. 그후 첫 주일에 교회로 갔는데 어떤 사무실의 공간을 빌려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사무실이 한국의 페인트 회사 주재원으로 나오신 김집사님의 사무실이었고 그곳에서 저희가족 (이지영 선교사, 제 딸 엄진) 과 김집사님(그때는 부인 집사님과 아이들은 한국에 있었음), 알마스 전도사 그리고 2명의 현지인 악보베, 나제즈다 자매님들 이었는데 몇주 안되어 악보베, 나제즈다 이 두분이 갑자기 교회를 안 나오고, 결국 4명의 한국사람과 1명의 현지인 알마스 전도사님이 같이 예배를 드리게 되니 알마스 전도사가 제게 찾아와 한국 사람이 많으니 목사님이 예배를 인도해 달라고 하더군요.

이후 김집사님의 가족들이 합류해서 부인 이집사님과 아들 두명이 같이 예배에 합류하게 되었고, 또 다른 회사에서 지사장으로 나온 임형제님이 합류하여 한인교회 같은 모임이 되었습니다.

2008년 가을즘 사진입니다.


저도 맡을수 밖에 없었는데 이유는 주일예배의 설교를 맡은 알마스 전도사가 이유없이 주일날 안나오고 전화도 안 받고 그런일들이 있었고 저 오기 전에도 있었다고 김집사님이 말씀해 주시더군요. 그래서 저도 맡을수 밖에 없었읍니다. 이때부터 한인예배 + 가끔 영어로 설명해 주며 기이한 형태의 예배가 되었습니다. 이후 지사업무로 카작에 오신 임형제님이 나오셨고 알마스 전도사의 약혼자, 그리고 아스타나 교회에서 이사온 현지인 스타스 율리야 부부, 가나사람 갓프레드 와 현지인 부인 과 3명의 자녀들, 그리고 김집사님의 가족들이 합류하여 더 많은 인원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가나 사람인 갓프레드 형제도 믿음의 사람이며, 할아버지때부터 가나의 파송된 선교사로 믿음의 가정을 이룬 가정이라 기본적인 믿음의 기초가 있어 가끔 말씀도 나누며 은혜의 교제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알마스도 여자친구 와 결혼하게 되었고, 임형제님도 수경 자매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지요. 저희가 임형제님과 수경자매 결혼식이 한국에서 있었는데 참석하였고 이제는 3명의 자녀를 낳고 아스타나에서 잘 살고 계시죠.)


나중에는 임형제님의 여자친구이며 러시아도 잘하는 수경 자매가 같이하며 제 설교 통역도 해 주어서 부족하지만 교회 모임의 형태가 점점 갖춰지게 되었습니다. 모임도 임형제님 아파트 거실이 넓어서 거기서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감사하죠.. 


제가 생각하기에는 우리가 좁은 사무실에서 모이는 것을 보고 임형제님이 자기 집에 주일에 혼자 있는데 회사에서 얻어주어 제법 넓으니 모임을 자기집에서 하자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하나님께서 그 일을 귀하게 보시고 믿음좋은 수경 자매를 허락해 주신 것으로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보상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제가 첫 사역지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러시아어를 배우며 있을때 -러시아어가 어려워서 정말 안 늘어서 힘든때 - 교회를 맡게 되었으며 여기저기에서 어쨌든 사람들이 모이고 예배하며 그룹이 형성되었을때 ....

박유석 목사님께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선교지에서는 한국에서 목회하듯이 하는 것보다 선교사가 해야 할 일은 다르다고 하신 것입니다.

즉, 선교사가 해야 할 일은 현지 목회자를 세워 그들이 자립할 수 있게 도움을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도 익숙한듯 한국에서 하듯이 목회를 하려고 하고 보고 배운대로 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현재 몽골에서 첫번째 연회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박유선 목사님의 조언이 중요한 역활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한국 선교사님들은 목회를 하시며 현지인 사역자들을 부교역자 대하는 하는 현실이거든요. 


(목회를 하셨던 선교사님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특히 은퇴를 앞두고 교회는 힘들어집니다. 왜냐하면 계속 적인 선교사의 지원으로 해왔기에 자립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에 .. 그나마 후임 선교사가 와서 맡아주면 지속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교회들은 없어지고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나사렛 사역의 핵심은 교단을 만들어 아.태 지구와 연결해 주고 카자흐스탄은 유라시아 지구와 연결해 주어 지속적인 연결성이 되어 신학교육, 훈련 및 연회를 구성하여 한국처럼 매년 목회자들이 교류하고 성장하게 연결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결론은 세워진 교회들이 소속감과 지속성이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


그러면서 1년이 지나고 있을때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갑자기 박유석 선교사님은 한국에서 1년 정도 휴식이 필요하다고 하셨고,  당시 2009년 9월.. 제가 무슨 이유로 인해 한국에 있었는데 고기 먹자고 부르셔서 양평 전원주택에서 고기를 먹는데 무슨 전화를 받으시더니 갑자기 저에게 뭘 도와 달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청빙 지원서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아무튼,  이제 한국에서 담임 목사님이 되셨으니 선교지로 다시 오실수 없게 되니 아스타나에 벌려 놓은 사역들이 많으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희 가족은 아스타나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이사할 날짜는 다가오는데... 저를 대신하여 후임을 맡겨야 하는데 난감한 일이 생겼습니다.


저는 함께 신앙생활을 해 보니 주일을 말도 없이 빠지는 현지인 알마스 전도사 보다는, 김집사님께서 너무 믿음도 좋으시고 러시아어도 잘 하시고 친화력도 좋으셔서 딱이려니 하고 부탁들을 드렸지만,,,, 몇번이나 너무 완강하게 거절하셔서 저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군요. 집사의 신분으로 절대 목회자처럼 해야 하는 사역을 맡을수 없다며 너무 완강히 거부하시니 저도 답답.....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아픈 목소리로 저에게 김집사님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목사님 , 기도 좀 해 주세요...

저희집에 강도가 들었습니다. 하면서... 김집사님의 아내 이집사님이  아이들 학교에 데려다 주려고 나간 후 얼마 있다가 출근 하려고 문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2명의 괴한이 칼을 들이밀며 집안으로 들어와 돈 내놓으라며 위협을 하더랍니다.

너무 놀라 생활비가 있는 곳을 가르키며 가져가라고 했는데 돈을 보자 눈이 뒤집히며 갖고서 튀어 나가더랍니다.

그 와중에 너무 감사한것은 부인 이집사님과 아이들이 학교 바래다 주려 나갔을때에 강도들을 만난것, 

가정 생활비만 있는 봉투를 들고 갔고 그 옆에 회사 자금 더 큰 돈이 봉투가 있었는데 그것은 놔두고 재빨리 도망갔다는 것이라며 그래도 불행중 감사한 내용을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아팠지만,,,,제가 해 줄 수 있는게 위로 뿐인데)

그후 김집사님이 뒤늦게 뛰어 나갔지만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 너무 놀라 가슴이 진정이 안되고 몸살로 끙끙 앓았다며 전화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분이 가만히 집에서 왜 이런일이 나에게 갑자기 일어났는가? 묵상하며 기도하는데... 제가 부탁한 말들이 생각 나더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부족하지만 제가 사역해 보겠습니다. 하셨죠... 할렐루야 !

저는 너무 감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빨리 순종하셨으면 이런일 없었을텐데 하며 안타까웠습니다.

그 후로 이제 평신도 김선교사님입니다, 하며 제가 추천하여 선교사 자녀들이 다닐 수 있는 텐샨학교로 두자녀들을 전학하게 했습니다. 순종하는 자에게는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 보상이 있습니다.....


김선교사님이 맡게 되면서 지금까지 교회가 잘 세워져 가고 있습니다.


저는 아스타나로 이사해서 주님께 순종한 종에게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사 더 큰 은혜로 세워 달라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김선교사님의 페인트 사업이 날로 날로 어려워 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의 사업은 번창하는데 한국에 있는 본사에 어려움이 있고 몇년 후 부도가 나고 어려움이 닥쳐왔습니다.

한국에서 페인트를 보내줘야 하는데 보낼 수가 없으니 큰 난관이었지요...  정말 주님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하며 기도했었습니다.

그때.. 평소 알고 계시던 화장품 사업을 하시던 부부가 찾아와 자기네 사업을 넘겨 받을수 있냐며 묻더랍니다.

그분들 사업은 잘 되었지만 오랜 해외 생활에 지쳐서 사업철수를 하고 싶은데 잘 되는 사업을 이왕이면 믿을만한 분한테 넘겼으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전화해서 기도 부탁을 하길래 제가... 주님이 주시는 기회 같으니 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며칠 후 인수 받기로 하고 이제는 화장품 사업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워낙 페인트 사업 할 때도 영업망을 개척하며 고생하신 분이라 화장품은 어찌보면 더 큰 기회의 시장이었는지도 .... 암튼 잘 되었지요..


우리 나사렛 선교사이신데 모르시는 분들이 너무 많고 하신것 같습니다.

혹시 제 글이 나중에 한국 나사렛 선교 역사에 기록 될 수도 있어서 비사로 적어 봅니다.


아스타나에서 제가 사역하면서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대통령의 고향에 왠 기독교 선교사들이 많냐며 비자를 내어 주지 않아서 저희도 결국 2011년 12월에 카자흐스탄을 떠날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교단의 협력으로 나사렛교단의 불모지인 몽골로 교회 개척 선교사로 다시 재파송 받아 2012년 5월25일 몽골 다르항으로 다시 사역을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게 됩니다....

저희 몽골도  지난 3월30일부터 4월1일까지 역사적인 몽골의 첫 연회를 열게 됩니다.


이 모든 내용은 제 선교 블로그에 있는 내용을 축약하여 올려 드립니다.

http://sunnyum.egloos.com/category/%EB%AF%B8%EB%B6%84%EB%A5%98/page/9      여기를 클릭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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